불인별곡 8 [완결] 불인별곡 [완결]



*





“세자빈마마와 원손마마시다, 어서 길을...”


“당장 비키거라”


갈 길이 급했다.
성문을 지키는 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허나 내 앞길을 막는다면,


“네놈 목을 칠 것이야”


“......어서 비키거라!”


“예, 예...”


김상궁의 호통에 수문장이 길을 내주었다.


“한시가 급하다. 어서 움직여라”


“예, 마마”


가마꾼을 재촉하는 소리에 내 손을 꼭 잡는 현이


“어마마마...”


“괜찮다.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렇게 두손을 맞잡고 한참을 갔다.
성문에서 궐문까지 얼마나 걸리겠냐만
나에겐 천년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내일은 웃는 얼굴로 입궁하거라'


'오랜만에 너와 후원을 거닐 것이다.
그때도 눈물을 보인다면
진짜 화를 낼 것이니 각오해야 한다'


엄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꾸 저하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분명 행복감에 가득 차 있었는데
이런 변란은 우리의 내일에 없었는데...


'내 약속하지 않았느냐.
너와 현이를 위해서라도 노력하겠다고'


'버텨보려 한다 ㅇㅇ아'


자꾸 저하의 얼굴이 아른거려 눈물이 차올랐다.
계속 눈을 훔치니 옆에 있던 현이도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김상궁, 아직 멀었습니까”


“얼마 남지 않았사온데...”


“네?”


“세, 세상에...!”


“무슨 일이라도....”


놀람을 금치 못하는 김상궁의 소리에
밖을 내다본 순간,
나 또한 두 손으로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당장 가마를 내려라. 당장!!!”


“예, 마마”


“마마 아니되옵니다.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아보...”


“현아 가자. 얼른 나오거라”


“마마!!!”


“무섭습니다 어마마마...”


“어서 이리와 어서!”


무서워하는 현이를 등에 업었다.


궁 안은 온통 피비린내로 가득했고,
그것을 증명하듯 길목마다 시체가 즐비했다.


“어마마마...”


“눈을 감아라. 아무 것도 보지 말아야 한다 현아”


“마마! 이러다 마마까지 다치십니다!!”


“어디부터 가야 한단 말이냐.
어디... 어디.......”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던 와중,



챙-



“꺅!!!!”


“웬 놈이냐”


“…….”


목에 닿은 차가운 느낌에 걸음을 멈췄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하아, 하...”


“어마마마!!!!”


“네 이놈!!!!
어찌 세자빈마마께 칼을 댄단 말이냐!!!”


“소, 송구하옵니다 마마!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주변 경계를 엄격히 하라는 어명이 있어서...”


“네놈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됐어요. 됐습니다 김상궁”


“마마!! 피, 피가...”


“죽여주시옵소서 마마!!!”


벌벌 떨며 자리에 주저앉는 내금위군.
놀란 김상궁이 황급히 내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난 괜찮으니 어서 저하가 계신 곳을 가르쳐 주게”


“세, 세자저하께서는 지금...”


“한 시가 급하네. 어서”


“문정전에 계십니다”


“알았네”


“마마! 위험합니다!!”


답을 듣자마자 김상궁의 손을 뿌리치고 앞을 향해 걸었다.


“어마마마...! 피가 납니다!!”


“눈을 감으라 하지 않았느냐"


“허나,”


“현아 잘 듣거라.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저하를 봬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
저하가 계셔야 너와 내가 있을 수 있어.
사람답게 말이다”


대답없이 날 더 꼭 붙잡는 현이


“한 시가 급하다. 한 시가 급해.......”


소릴 죽인 채 흐느끼는 현이를 다시 고쳐 업고

문정전을 향해 갔다.


전각을 환히 비추는 횃불이
마치 불이라도 난 듯 넘실거리고 있었다.





*





“전하”


“…….”


“한번만, 한번만 소자의 말을 믿어주십시오”


“네 말을 어찌 믿겠느냐.
너의 행실을 알고 있는 자가 족히 백 명은 넘을 것이다!”


“단 한번이라도!!!!!!”


“…….”


“너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리 말씀해 주세요 아바마마”


주상의 눈이 흔들렸다.


'아바마마'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아바마마.’



“저들의 농간에 속지마세요...”


“…….”


엎드려 울분을 토하는 세자


“제발 제 말을 들어주세요 아바마마...
소자의 진심을.......”


“뭐, 뭣들하느냐! 어서 정휘량을 들이지 않고!”


“예!”


흐느끼는 세자 너머로
평안 감사 정휘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 심히 불편한 얼굴이었다.


“전하, 신 정휘량이옵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겠구나”


정휘량의 등장에도 고갤 들지 않는 세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영상이
정휘량을 향해 고갤 끄덕인다.


“최근 세자를 만난 적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자가 직접 평양에 찾아간 것이냐”


“예, 연통도 없이 오셨사옵니다”


“연유가 무엇이라더냐”


“…….”


“연유가 있을 것 아니냐”


“큰 뜻을 품고 오셨다 하셨사옵니다”


“큰 뜻이라면,”


“.......”


“그것이 무엇이냐!!!!”


“하루 빨리....”


“…….”


“용상에 앉고 싶다 하셨습니다”


말을 끝낸 정휘량은
이마를 조아리며 벌벌 떨기 시작했고
주상은,


“세자는 답하라. 이 자의 말이 사실이냐”


세자에게 진실을 요구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사옵니까”


“뭐라”


“어떤 답을 원하십니까. 그 답이 곧 제 뜻입니다”


“네 이놈!!!!!”


“정휘량은 들으라.
해서, 연로한 노모의 약값은 마련하였는가.
방납으로 인한 제정 문란은 눈감아 주기로 했는가 말이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게야!!!!”


“충심을 돈에 팔아 넘긴겐가.
아니면 요직에 팔아 넘긴겐가”


세자의 말에 더욱 더 몸을 떠는 정휘량.
영상의 얼굴도 따라 굳어간다.


“누구에게 팔아 넘겼단 말이냐”


“…….”


“누구의 사주냐 묻지 않느냐!!”


한참 뜸을 들이던 세자의 눈길이 영상에게 닿는 순간,



“열지 못하겠느냐!!!”



빈의 외침이 사방을 깨트렸다.





*









“어마마마.......”


“당장 열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자결할 것이다”


“마마!!!”


“어찌하겠느냐.
내가 죽는 꼴을 기어코 보겠느냐?”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어명이 있었사옵니다 마마!
제발 칼을 거두어 주십시오!!”


“오냐. 네 놈이 진정 원한다면”


다른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힘이라곤 이것 뿐이니까,
앞을 가로막는 이 자에게 내밀 수 있는 건
미천한 몸뚱아리 뿐일테니.


옆에서 문을 지키던 자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 들고
내금위장을 겁박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숨을 거두마”


“아니되옵니다 마마!!!”


잠시 멎었던 상처에 칼을 대니
또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어마마마!!!”


“뭣하느냐 어서 문을 열지 않고!!”


피를 보고 화들짝 놀라 급히 문을 여는 내금위군


“하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칼을 내려놓자
김상궁이 내게 달려왔다.


“마마,”


“괜찮아요.”


울먹거리는 김상궁을 두어번 토닥였다.
이제 다 됐어요, 저하를 뵐 수 있게 됐어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다 이해한 듯 보였다.


“드시지요”


흐느끼는 김상궁을 지나
현이와 함께 들어선 문정전 앞뜰에는


“저하...!!!”


저하께서 엎드려 계셨다.
온통 피칠갑을 하신 채 말이다.


“아바마마!!!”


“현이야”


“아바마마....!!”


저하를 향해 달려가는 현이를 보고
나도 조금씩 걸음을 뗐다.
마음 같아선 성큼성큼 걸어가 꽉 안아드리고 싶은데
넘치는 눈물 때문에 똑바로 걸을 수 없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 일렀거늘!!”


“계속 말렸으나 세자빈마마께서 목에 칼을...”



“ㅇㅇ아”


내금위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곤 현이의 손도 놓고 오로지 나를 향해 걸어오셨다.


“당장 세자를 붙잡아라!”


“예!”


“이 나라의 지존이 되실 분이시다!
감히 어디에 손을 대느냐!!!”


나의 눈물 섞인 외침에 희미하게 웃어 보이시는 저하.
코앞까지 와서야 내 목을 쓰다듬으신다.


“누구의 짓이냐”


“저하...”


“정녕 네가 그랬단 말이냐”


“어찌 이리 다치신 것입니까!!
어찌, 어찌...”


“겁도 없이 목에 칼을 댔단 말이냐!!!”


“흐윽, 저하.......”


주륵, 한 방울 눈물을 흘리시는 저하


“제발 그러지 말거라. 다치지 마 제발”


“지금 제 걱정을 하시는 것입니까”


“내가 아니면 누가 네 걱정을 한단 말이냐”


하지만 금세 옅은 미소를 지으신다.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이까짓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하께서 무사하시기만 한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


“ㅇㅇ아”


“…….”


“미안하다”


“저하,”


“명일은 정말... 밝을 줄 알았는데”


“저하!!!!”



“그 짧은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이리 큰 사달이 났구나.
내 탓이야. 내 잘못이다”


“내일도 모레도 저하와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


“ㅇㅇ아”


“…….”


“현이는 성군이 될 것이다.
만백성이 따르는 최고의 지존이 될게야”


“…….”


“그러니 현이가 용상에 앉을 때까지
네가 잘 보살펴야 한다. 알았지?”


“그만 하십시오.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입니다”


“너 또한 아프지 말고 혼자 눈물 보이지 말고...
외로워하지도 말거라.”


“그만 하세요 저하!!”


“내가 항상 보고 있을테니”


“제발 그만.. 그만 하세요 저하...”



“울지 말거라. 전에도 말하지 않았느냐.
남들 앞에서 눈물 보이지 말라고.
내 체면도 생각해서, 응?”


자꾸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 곁엔 항상 저하가 계실건데,
저하께서 현이에게 용상을 넘겨주시면 될텐데.


“약조도 못 지키고 떠나 미안하구나”


제발 그만하시라고 외치고 싶은데
목구멍에 탁 막힌 설움 때문에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꾸역꾸역 눈물만 삼킬 뿐이었다
저하가 어루만져주시는 손길만 느낄 뿐.



“세자빈과 원손을 데리고 나가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하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내금위군이 나에게 다가왔고,


내가 저하를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전하!!!! 제발 세자저하를 살려주시옵소서!!”


“아바마마를 살려주세요 할바마마!!”


두 손 싹싹 비는 것밖엔 없었다.


“뭣하는 게야! 어서 내보내지 않고!!”


“할바마마! 아바마마를 살려주세요!!”


“제발 한번만... 이번 한번만.......”


“가시지요 마마”


“이거 놔라!!!”


“할바마마!!!!”


날 잡아끄는 내금위군.
가만히 보실리 없는 저하께서 한 마디 하자


“함부로 손대지 말거라.
감히 네놈 따위는 우러러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다”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손을 뗀다.


“저하!! 저하!!!!”


“먼저 나가 계세요 빈궁. 곧 따라 나가겠습니다”


“아니되옵니다 저하!!!
같이 가셔야 해요!! 저와 함께 가셔야 해요!!”


“금방이면 됩니다. 걱정 마세요”


“저하!!!”


“현아”


“아바마마...”



“이제부턴 니가 어미를 보살펴야 한다. 알겠느냐”


“아버지..!!!”


“꼭 성군이 되어라”


저하께서 현이를 붙잡았던 손을 거두시곤
내금위군에게 눈짓을 보냈다.


“가시지요 마마”


“저하!!! 저하!!!!!”


현이와 함께 끌려 나가는 날 쳐다보지 않으시는 저하.
그저 고갤 숙인 채 뒤돌아 계실 뿐이다.


“이거 놔라!! 저하!! 함께 가셔야 합니다!!”


“아바마마...”


“전하!! 저하를 살려주시옵소서!!!!
저하는 아무 잘못이 없사옵니다!!”



“살려주시옵소서!!”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작은 틈 사이로 저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옅은 미소를 봤다.


흐르는 눈물과 반대로 살며시 짓던 미소를



“아니되옵니다 저하... 저하.......”





*





“다신 문을 열지 마라. 알겠느냐!!!!”


“예 전하”


세자빈과 원손이 끌려 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세자.


이젠 고갤 돌려 주상이 아닌 영상을 쳐다본다.
원망과 슬픔이 뒤덮인 눈으로


“세자는 뭣하느냐!
어서 진실을 말하라. 누구의 짓이냔 말이냐!”


“…….”


“너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사주한 이가 있고
너 또한 그가 누군지 안다는 것 아니냐!!!!”


“…….”


“말하지 않을 것이냐.

오냐 그럼 정휘량 니가 말해보거라.
널 사주한 자가 누구냐”


“그, 그런 자는 없사옵니다 전하...”


“이것은 엄연히 역모죄다.
과인과 국본을 욕보이게 한 죗값은
목숨으로도 치를 수 없을 것이야.
지금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네놈도 역적모의를 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느냐”


“저, 전하...!!”


“그 가문을 박멸시켜버릴 것이다.
이래도 말하지 않겠느냐”


주상의 섬뜩한 목소리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정휘량은 식은땀만 뻘뻘 흘렸고
그를 지켜보는 영상의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그 때, 무언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쥔 채 고갤드는 세자


“전하”


“…….”


“소자의 명이 다 한 듯 싶습니다”


“뭐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세치 혀를 놀렸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네 이놈!!!!!!!!”



“죽여... 주시옵소서.......”


세자의 말에 급격히 흔들리는 영상의 눈.
세자 또한 영상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문다.


“네 놈이 정녕 미친게로구나!!!!”


화가 난 주상이 옆에 있던 금군의 칼을 빼앗아

세자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리곤,


“감히 과인을 농락한 것이냐”


목에 칼을 들이댔다.


“전하”


“…….”


“소자의 불충함을 용서해주시옵소서”


“정녕, 이 모든 게 너의 짓이란 말이냐”


“…….”


“대답하라!!!!!”


“소자가 용상에 앉았다면
가장 먼저 노장파를 쓸어버렸을 것입니다.
국정을 어지럽히는 자들을 처단하는 것이
이 나라 지존이 해야할 일 아니겠사옵니까”


“이, 이놈이..!”


“그리하여 전하가 이뤄내지 못한
탕평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고분고분 대답하는 세자를 보고 부들부들 떠는 주상.
금방이라도 내리 칠 것 같아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세자에게



챙-



칼을 던져주곤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곤,


“더 들을 것도 없다.
지금부로 세자를 폐서인하도록 한다.
그리고 네놈은”



“자결하라”



뜻밖의 명에 금군과 대신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역모의 죄는 죽어 마땅할 터, 이 자리에서 직접 끊어라”



고요함과 적막이 흐르는 이곳.
세자가 더듬거리며 칼을 향해 손을 뻗자
몇몇 금군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아.......”


칼의 손잡이를 잡곤 밤하늘을 쳐다보는 세자


오늘따라 영롱한 달을 보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렀다.




'저하, 그거 아십니까?'


'무엇을 말이오'


'금슬이 좋은 부부는 한날한시에 죽는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소'


'정말입니다! 설란이가 그러는데
옆집 살던 노부부도 한날한시에 갔답니다.
근데 그 부부 금슬이 어찌나 좋았던지,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답니다'


'흠.......'


'신기하지 않으십니까?'


'그럼 우리도 한날한시에 간단 말이오?'


'음....... 글쎄요'


'글쎄요?'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요'


'두고 봐야 안다....... 참말이오?'


'예!'


'우리 금슬도 궐내에 소문이 자자한 것 같던데'


'그, 그렇습니까?'


'아니 그러냐 하늘아'


'그러하옵니다 저하'


'아.......'


'허나 난 그러기 싫소'


'예?'


'빈궁과 한날한시에 죽는 것 말이오. 난 원치 않소'


'왜, 왜요?'


'그대보다 하루 더 살 것이오'


'예에? 그럼 저 혼자 죽게 그냥 놔두실 것이옵니까?
저하!! 너무하십니다!!'


'하하 그런 뜻이 아니오'


'아니면요!'


'마지막까지 그대 곁을 지켜야 할 것 아니오.'


'…….'


'이승의 일은 나에게 맡기고
하루만 먼저 가 있으면 내가 뒤따라가겠소. 어떻소?'


'저하.......'


'빈궁은 걸음이 느리니 내가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오.
아니 그렇소, 하하'


'히히...'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세자가 칼을 고쳐 잡았다.


“지난 날 저와 한 약조는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장인.
장인만 믿겠습니다.”


그리곤 영상을 보며 미소지었다.


"......."


차오른 눈물을 참으며 자리에 바로 엎드리는 영상


“아바마마”


이번엔 세자의 눈길이 주상에게 닿았다.

그는 자신을 외면하는 아버지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다 못난 아들 탓이니 심히 괘념치 마시옵소서.”


답이 없는 주상을 보며

또 다시 옅은 미소를 짓던 세자가 칼을 높게 들었다.


그리곤,


떨리는 손으로 슬픔이 가득 찬 눈을 한 채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소자,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
.
.








15년 후




“전하, 소신이옵니다”


하늘이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선다.
가볍고도 진득한 발걸음으로 한 걸음씩 떼면
자리에 앉아있는 주상이 눈에 들어온다.



“오셨습니까”


밝은 미소로 그를 맞이하는 이 나라 조선의 지존.


한 번 인사를 올린 뒤 가만히 서있으니
자리에 앉으라는 눈짓을 보낸다.


“편전이 아니라 놀라셨겠지요”


“....예”


“마음이 번잡해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결국 또 오게 되더이다.
어머님이 계시던... 이곳으로”


“…….”


“어린 아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그 분이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전하...”


“눈물은 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저,
아직도 돌아가셨단 사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


“그래서 더 내금위장을 찾는가 봅니다.
내 마음 알아주는 건 그대 뿐일테니”


“망극하옵니다 전하”


“어머니께서 그러셨지요.
이 넓은 궁 안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오직 내금위장 뿐이라고”


“…….”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당치 않으십니다. 어찌 소신에게 그런 말씀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분들을 지켜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


하늘이 고갤 숙인다.
그리곤 두 눈을 꾹 감는다.


“오늘부로 이곳을 폐쇄할까 합니다”


“…….”


“이제 보내드려야겠습니다.
두 분 다, 먼 곳으로”


“분명... 줗은 곳으로 가셨을겁니다”


“두 분 금슬은 전에도 알아주지 않았습니까.
아마 함께 있는 그곳이 좋은 곳이겠지요”


입가에 서리는 미소


“내금위장”


“예 전하”



“아바마마께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


지난 15년 간 현은 아비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억지로 그 기억을 삼키려는 것처럼
이상하리만치 궁금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왠지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이 물음이


하늘의 심장을 파고든다.



“마마께선, 두 번 다시 없을 최고의 성군이셨습니다”



그의 대답에 씨익 웃는 주상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


“지극한 충심이에요 내금위장”


“전하, 소신의 뜻은...”


“압니다. 무슨 뜻인지”


“…….”


“나에게도 그 분은 다시는 없을 최고의 성군이자

아버지이십니다.
물론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해 밉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말을 끝맺는 주상.
잠시 자신의 앞에 놓여진

한권의 책을 만지며 생각에 잠긴다.




“전하”


“무슨 일이냐”


“내금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급히 내금위장을 찾는지라...”


“알았다”


“전하 소신은 괜찮으니,”


“가보세요.”


“…….”


“내금위장이 지키고 서있어야
궁궐 수비도 제대로 될 것 아닙니까”


“송구하옵니다 전하”


“일하고 있는 사람 불러낸 게 잘못이지요.
괘념치 말고 어서 가보세요”


“예, 허면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하곤 방을 나서는 하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상이
옅게 웃으며 다시 책을 들여다본다.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어마마마.
어서 가서 아바마마께 전해주세요.
정말 행복했다고, 더할 나위 없었다고.”






책의 마지막 장
어여쁜 글씨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이렇게 나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버님은 저하와의 약조대로
끝까지 우리 모자를 지켜주셨고,
그 덕에 현이는 용상에 오를 수 있었다.


허나 그 누가 알까


사랑하는 여인에게
역적의 자식이란 오명을 입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칼을 든 그분의 마음을,


그 서러운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생의 마지막 길목에 서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그 분이 그립다.


이제 곧 하늘에서 만나겠지만
만약, 나에게 지난날의 시간이 생긴다면…


마지막의 그 때로 돌아가 임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대의 여인이라 행복했다고


더할 나위 없었다고.




.
.
.



불인별곡
不忍別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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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8/02/14 00:1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14 23: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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